개요
중세 노르만 시대의 성곽 유적을 탐험하고 이르노 계곡의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하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나, 도전적인 하이킹 코스를 경험하고 싶은 모험을 즐기는 탐방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방문객들은 부분적으로 복원된 성벽과 탑을 둘러보며 과거의 건축 양식을 살펴볼 수 있고, 성 정상에서는 주변 마을과 계곡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또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관련된 예배당 유적도 살펴볼 수 있다.
다만, 성으로 향하는 길이 잘 정비되어 있지 않고 안내 표지판이 부족하며, 유적 자체도 일부 방치되어 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특정 구역은 안전 문제로 접근이 제한될 수 있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시
- 메르카토 산 세베리노 마을 내 주차 공간(예: 코무네 광장)에 주차 후, 성까지 이어지는 도보 경로를 이용한다.
- 성 입구까지 차량 접근이 어려울 수 있으며, 일부 도로는 포장 상태가 좋지 않거나 좁을 수 있다.
내비게이션 이용 시 'Castello di Mercato San Severino' 또는 제공된 주소로 검색한다. 다만, 최종 접근로는 도보 이동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도보 이용 시
- 메르카토 산 세베리노 시내 또는 인근 판돌라(Pandola) 지역에서 성으로 이어지는 하이킹 트레일이 있다.
- 일부 경로는 표지판이 부족하고, 길이 험하거나 풀이 우거져 있을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편안하고 안전한 등산화 착용이 권장된다.
주요 특징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노르만 양식의 성곽 유적으로, 오랜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성벽과 탑의 잔해를 둘러보며 중세 시대를 상상해볼 수 있으며, 정상에서는 이르노 계곡의 아름다운 파노라마 전경을 만끽할 수 있다.
성 내부에는 저명한 신학자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마지막 환시를 경험했다고 전해지는 예배당의 유적이 남아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장소로, 방문객 협회 등을 통해 관련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성으로 이어지는 여러 갈래의 등산로는 자연을 즐기며 역사의 현장으로 향하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일부 구간은 길이 험하고 정비가 부족하여 모험심을 자극하며, 주변 자연 경관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성곽 정상 전망 지점
이르노 계곡과 메르카토 산 세베리노 마을 전체를 아우르는 탁 트인 파노라마 사진을 담을 수 있다. 특히 해 질 무렵 풍경이 인상적이다.
고대 성벽 및 망루 주변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성벽과 망루를 배경으로 역사적인 분위기의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다양한 각도에서 성의 웅장함을 담아본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성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 주요 경로가 있으며, 하나는 메르카토 산 세베리노 시내에서, 다른 하나는 판돌라(Pandola) 마을에서 시작하여 성의 정문으로 이어진다. 판돌라 쪽 경로가 성 전체를 조망하며 오르기에 좋다는 의견이 있다.
일부 방문객은 일몰 시간에 맞추어 방문하면 더욱 아름다운 풍경과 사진을 남길 수 있다고 언급한다.
등산로나 성 내부의 길이 고르지 않고 가파른 구간이 있으므로, 편안하고 접지력 좋은 신발 착용은 필수이다.
안내 표지판이 매우 부족하거나 낡았다는 지적이 많으므로, 방문 전 성의 구조나 경로에 대해 미리 숙지하거나 GPS 앱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성곽 유적의 보존 상태가 완벽하지 않고, 일부 구역은 방치되거나 쓰레기가 있는 등 관리가 미흡하다는 평가가 있으니 방문 시 참고한다.
성 내부의 특정 중요 지점이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안내가 부족할 수 있으므로, 관련 정보를 미리 찾아보거나 방문객 협회에서 진행하는 가이드 투어 참여를 고려해볼 수 있다.
역사적 배경
노르만족의 정착과 성의 기원
로베르토 일 구이스카르도(Roberto il Guiscardo)를 비롯한 노르만인들이 남부 이탈리아에 도착하면서, 산세베리노 가문이 현재의 메르카토 산 세베리노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팔코(Palco) 언덕에 성의 초기 핵을 건설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르만 성곽 건설
산세베리노 가문에 의해 본격적으로 성곽이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노르만 양식 성으로 발전했다.
산세베리노 가문의 중심지
산세베리노 가문은 남부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 가문 중 하나로 성장했으며, 이 성은 그들의 주요 거점이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성내 예배당 중 한 곳에서 마지막 환시를 경험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토마소 3세 디 산세베리노는 여왕 조반나에 의해 부왕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고고학적 조사 및 복원
성곽 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져 요새화된 정착지의 변화와 다양한 건설 단계를 밝혀냈다. 현재도 부분적인 복원 및 안전 조치가 진행 중이다.
여담
산세베리노 성은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노르만 양식의 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규모가 상당했다고 한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성 내부의 예배당 중 한 곳에서 마지막 환시를 경험한 후, 더 이상 저술 활동을 하지 않고 그의 고해 신부이자 비서인 레지날도에게 아무것도 구술하지 않았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리옹 공의회로 가는 길에 사망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산세베리노 가문의 영지는 한때 시칠리아까지 이를 정도로 광대했으며, 남부 이탈리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고대 로마 시대의 도시 로타(Rota)가 파괴된 후, 생존자들이 인근 팔코(Palco) 언덕으로 피신하여 이 성의 초기 정착지를 형성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성 내부에는 총 3개의 교회 또는 예배당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종교 시설도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