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1803년 술리오테 여성들의 자유를 향한 비극적인 저항과 용기를 기리는 역사적 의미가 깊은 기념비를 직접 보고, 그 숭고한 정신을 느끼고 싶은 역사 애호가나 추모객들이 주로 찾는다.
방문객들은 가파른 계단을 올라 거대한 조각상을 마주하며 당시의 처절했던 상황을 되새길 수 있고, 기념비가 위치한 절벽 위에서 주변의 아름다운 산악 및 해안 경관을 조망할 수도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기념비 주변의 안내 정보가 부족하고, 화장실과 같은 편의시설이 없어 아쉽다는 의견을 남기기도 한다.
접근 방법
🚗 자가용/택시 이용
- 대중교통 접근이 어려워 자가용이나 택시 이용이 필수적이다.
- 가장 가까운 마을은 카마리나(Kamarina)이며, 성 디미트리오스 수도원(Saint Dimitrios Monastery) 주차장까지 차량으로 이동 후 도보로 접근한다.
수도원에서 기념비까지는 약 410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주요 특징
1803년 술리오테 여성들의 비극적이지만 용감한 선택을 기리는 높이 13m, 길이 18m의 거대한 조각상이다. 6명의 추상적인 여인들이 손을 잡고 춤을 추며 절벽으로 향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성 디미트리오스 수도원에서 기념비까지 이어지는 약 410개의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이 길을 따라 오르며 방문객들은 순례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기념비가 위치한 해발 700m의 잘롱고 산 정상에서는 프레베자 지역과 이오니아 해를 아우르는 탁 트인 파노라마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역사적 장소의 비극미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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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 정면 전체 모습
6명의 여인상이 손을 잡고 있는 웅장한 기념비 전체를 담을 수 있는 구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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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 뒤편 절벽과 풍경
기념비와 함께 발아래 펼쳐지는 아찔한 절벽, 그리고 멀리 보이는 이오니아 해의 광활한 풍경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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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는 계단에서 바라본 기념비
기념비로 향하는 돌계단 중간 지점에서 올려다보는 시선으로 기념비의 위엄과 주변 자연 경관을 함께 촬영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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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롱게이아 (Zalongeia)
매년 여름
프레베자 시에서 주최하는 행사로, 가장 가까운 마을인 카마리나 중앙 광장에서 열리는 축제 및 기념 행사이다. 잘롱고의 희생을 기리고 지역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방문 팁
기념비 입구의 금속 문이 닫혀 있는 경우가 있지만, 보통 잠겨있지 않아 밀고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기념비 입구 왼쪽 표지판을 따라 숲길로 약 10분 정도 걸어가면 숨겨진 오래된 탁시아르헤스 성당(Taxiarhes Holy Church)을 방문할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40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야 하므로 편안하고 접지력 좋은 신발 착용은 필수이며, 특히 더운 날에는 충분한 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햇볕이 강하고 그늘이 많지 않으므로, 특히 여름철 방문 시에는 모자나 선크림을 반드시 챙기는 것이 좋다.
기념비와 그 주변에는 화장실이 없으므로, 방문 전 성 디미트리오스 수도원이나 인근 마을에서 미리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변에 염소가 돌아다닐 수 있으므로, 출입문을 잘 닫고 가져온 쓰레기는 반드시 되가져가야 한다는 당부가 있다.
역사적 배경
잘롱고의 춤 사건 발생
알리 파샤가 이끄는 오스만 제국군에 포위된 술리오테 여성들과 아이들이 자유를 위해 잘롱고 산 절벽에서 함께 춤을 추며 몸을 던져 집단 자결했다. 이는 그리스 독립 정신의 중요한 상징적 사건으로 기억된다.
기념비 건립 최초 제안
프레베자 지역 교사 회의에서 카마리나 초등학교 교장 조지 사카스(George Sakkas)가 술리의 영웅적인 여성들을 기리는 기념비 건립을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기념비 상징적 기공식
지역의 정치, 군사, 종교 지도자들과 많은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비 건립을 위한 상징적인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기념비 설계 공모 및 당선작 선정
약 50만 드라크마의 기금이 모인 후, 그리스 교육부 주관으로 전국 조각가 및 건축가를 대상으로 한 설계 공모가 열렸다. 심사 결과 조각가 조지 종골로풀로스(George Zongolopoulos)와 건축가 파트로클로스 카란티노스(Patroklos Karantinos)의 공동 제안이 당선되었다.
기념비 건설 시작
조지 종골로풀로스와 파트로클로스 카란티노스의 무보수 감독 하에 기념비 건설이 시작되었다. 대리석 장인 엘레프테리오 기프토풀로스가 기술 부분을 담당했으며, 자재 운반 등 어려운 작업에 카마리나 주민들과 군부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기념비 완공 및 제막식
6년간의 건설 끝에 기념비가 완공되었고, 정치 지도자들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제막식이 열렸다. 기념비 받침대 동쪽에는 건립 공헌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대리석 명판이 설치되었다.
기념비 복원 및 유지보수 작업
프레베자 시와 조지 종골로풀로스 재단이 협력하여 기념비의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외관을 보존하기 위한 복원 및 유지보수 작업을 진행했다.
여담
기념비는 손을 잡고 있는 6명의 추상적인 여성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길이는 18미터, 높이는 13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기념비 제작에는 약 4,300개의 하얀 석회암 블록(각 40x30x25cm 크기)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념비 건설 자금은 두 차례에 걸친 범그리스 학생 모금 운동을 통해 주로 마련되었다고 전해진다.
조각가 조지 종골로풀로스와 그의 아내 엘레니 파스칼리두-종골로풀루는 매년 봄부터 여름까지 3~4개월간 현장에 머물며 건설 작업을 도왔다고 한다.
모든 건설 자재(모래, 자갈, 콘크리트, 물, 목재 등)는 초기에는 사람의 손으로 운반되었으나, 이후 임시 운반 장치가 고안되어 사용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매년 약 3만 명의 사람들이 이 역사적인 기념비를 방문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기념비 아래, 해발 590미터 지점에는 성 디미트리오스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이곳을 거쳐 기념비로 향한다.
일부 방문객들은 5세 어린이도 계단을 오를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어, 예상보다는 수월하게 정상에 도달했다는 소감을 남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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