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잘 보존된 중세 비잔틴 성곽을 탐험하고 테살리아 평원의 탁 트인 파노라마 전경을 감상하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 및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는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고대 유적 위에 세워진 역사적 의미와 함께 주변 자연경관을 함께 경험하고 싶은 이들에게 적합하다.
방문객들은 성벽을 따라 거닐며 주변 풍경을 조망할 수 있고, 성 내부에 남아있는 모스크, 물탱크, 병영 등의 유적을 통해 과거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성 입구 근처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일부 방문객들 사이에서는 입장료에 비해 성 내부의 볼거리가 다소 부족하다거나, 성 내부가 대부분 비어있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시
- 카르디차(Karditsa) 시에서 서쪽으로 약 14km 거리에 위치한다.
- 파나리(Fanari) 마을로 진입 후, 'Kastro' (Κάστρο) 표지판을 따라 이동하면 성 입구 근처까지 차량 접근이 가능하다.
성 입구까지 아스팔트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는 언급이 있다.
🚌 대중교통 이용 시
- 카르디차까지는 아테네 또는 테살로니키에서 KTEL 시외버스나 기차를 이용할 수 있다.
- 카르디차에서 파나리 마을까지 이동하는 지역 대중교통편은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
주요 특징
성곽은 언덕 위에 위치하여 주변 테살리아 평원의 숨 막히는 전경을 사방으로 조망할 수 있다. 맑은 날에는 멀리 올림포스 산까지 보인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시야가 탁 트여있다.
운영시간: 운영 시간 내내
14세기에 요새화된 이 성은 다섯 개의 사각형 탑과 견고한 서쪽 성문 탑 등 중세 비잔틴 건축 양식을 잘 보여준다. 복원 작업을 통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운영시간: 운영 시간 내내
성 내부에는 과거 오스만 제국 시절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스크의 흔적과 두 개의 물 저장고(cistern), 병영 건물 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이를 통해 당시 성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운영시간: 운영 시간 내내
추천 포토 스팟
성벽 위에서의 평원 조망 지점
성벽에 올라서면 아래로 펼쳐지는 광활한 테살리아 평원을 배경으로 인상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서쪽 게이트 타워 앞
성의 주 출입구였던 견고한 게이트 타워를 배경으로 중세 성곽의 웅장함을 담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성 내부 유적과 함께
성 안에 남아있는 옛 건물의 잔해나 물탱크 등을 활용하여 역사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독특한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입장권 구매 시 현금 결제만 가능할 수 있으므로, 소액의 유로화 현금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성 입구 바로 아래에 카페가 있어, 관람 후 테살리아 평원의 멋진 전망을 바라보며 커피나 음료를 즐길 수 있다.
매표소 직원에게 성의 역사나 주요 볼거리에 대해 문의하면 친절한 안내와 설명을 받을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파나리 성 방문 시 인근의 플라스티라 호수(Plastira Lake)도 함께 둘러보는 것을 추천하는 의견이 있다.
성 내부에는 별다른 안내 시설이나 설명 자료가 부족할 수 있으니, 방문 전 관련 정보를 미리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고대 도시 이토메 유적지
파나리 성이 위치한 자리는 고대 도시 이토메(Ithome)가 있던 곳으로, 초기 비잔틴 시대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헌 첫 등장
파나리(Fanari)라는 지명이 문헌에 처음 언급된 시기이다. 당시 에피루스 공국의 섭정 안나 팔라이올로기나 칸타쿠제네의 군대가 잠시 점령했다.
요새화
에피루스의 통치자 요한네스 2세 오르시니(John II Orsini)가 이곳을 요새화하여 현재 성곽의 기초를 다졌다.
지역 유지들의 기록
파나리의 지역 유지들(archontes)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며, 이들은 알바니아인의 정착을 막고 인근 수도원의 소유권을 확인받았다.
주교좌 설립
파나리에 주교좌가 설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오스만 제국 정복 이후에도 유지되어 대주교좌로 승격되기도 했다.
비잔틴 제국의 일시적 통치
모레아의 데스포티스이자 훗날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는 콘스탄티누스 11세 팔라이올로고스가 중부 그리스로 세력을 확장하며 파나리에 자신의 총독을 임명했다.
오스만 제국 시대 기록
오스만 제국 통치 하의 페나르(Fenar, 파나리) 마을에는 3개 구역에 53가구의 무슬림과 6개 구역에 370가구의 기독교인이 거주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여담
파나리 성은 고대 도시 이토메(Ithome)의 유적 위에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성곽은 직경 약 100미터의 원형 고원 정상에 자리 잡고 있으며, 테살리아 평원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는 평가가 있다.
성 내부에는 한때 모스크로 사용되었던 건물의 흔적과 두 개의 물 저장고, 병영 등의 유적이 남아있어 다양한 시대의 역사가 겹쳐 있음을 보여준다는 언급이 있다.
파나리라는 지명은 '등대' 또는 '횃불'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Φανάρι(Fanari)'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이는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과 감시 역할을 시사한다는 얘기가 있다.
성벽은 다섯 개의 사각형 탑과 서쪽의 강력한 게이트 타워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당시 비잔틴 성곽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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