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고대 그리스 역사, 특히 마케도니아 왕국의 중요한 유적을 직접 보고 배우려는 역사 애호가나 고고학에 관심 있는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에게해 연안에 자리 잡아 역사적 의미와 아름다운 해안 풍경을 동시에 경험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매력적인 장소이다.
이곳에서는 친절한 현지 가이드의 무료 해설을 들으며 고대 피드나의 역사와 유적의 의미를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고, 잘 보존된 비잔틴 시대의 바실리카 유적과 성벽 등을 탐방하며 에게해를 배경으로 한 유적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일부 방문객은 운영 시간이 평일 오후 2시 30분까지로 짧고 주말에는 문을 닫는다는 점, 또는 발굴되어 관람 가능한 유적의 범위가 기대보다 적다는 점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카테리니에서 북동쪽으로 약 16km, 디온에서 북동쪽으로 약 28km 떨어져 있으며, 마크리기알로스 마을에서 약 2.5km 거리에 위치한다.
- 유적지 입구 근처에 무료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는 언급이 있다.
주요 특징
많은 방문객이 극찬하는 현지 가이드의 무료 해설을 통해 고대 피드나의 역사와 유적의 의미를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다. 영어와 독일어 안내가 가능하며, 번역기를 사용해 다른 언어로도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인다고 한다.
운영시간: 운영 시간 내
고고학 유적지가 에게해 바로 옆에 위치하여, 역사적인 유물과 함께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바다를 향해 지어진 요새화된 주교좌 교회 유적이 인상적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비잔틴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들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고고학적 중요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눈에 보이는 건물들은 주로 비잔틴 시대의 것들이며, 고전기 및 헬레니즘 시대의 유적은 그 아래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추천 포토 스팟
에게해를 배경으로 한 유적지 전경
유적지 내에서 에게해를 배경으로 고대 유적의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 특히 해안가에 가까운 유적이나 높은 지대에서 촬영하면 좋다.
비잔틴 시대 바실리카 유적
잘 남아있는 바실리카의 벽체와 구조물은 역사적 분위기를 담은 사진을 남기기에 적합하다. 내부의 우물이나 프레스코 흔적(남아있다면)도 좋은 피사체가 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입장료는 무료이며, 현지 가이드가 자발적으로 상세한 설명을 제공한다.
방문객이 많지 않아 비교적 한적하게 유적을 둘러볼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현지 가이드가 영어, 독일어 등으로 설명을 제공하며, 매우 친절하다는 평가가 많다.
운영 시간이 평일 오후 2시 30분까지로 짧고 주말에는 문을 닫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역사적 배경
미케네 시대 정착
유적지 북쪽 언덕에서 미케네 시대(기원전 1400년경) 정착지가 발견되었다.
트라키아인 거주
이 지역은 트라키아인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최초 주화 발행
피드나가 자체적으로 주화를 처음 발행했다.
아테네의 공성전 실패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 아테네가 피드나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마케도니아 점령 및 주민 이전
마케도니아의 아르켈라오스 1세가 피드나를 점령하고 주민들을 내륙(현재의 키트로스)으로 이전시켰다.
주민 복귀
아르켈라오스 1세 사후 주민들이 해안가의 옛 터전으로 돌아왔다.
필리포스 2세 재점령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다시 점령하여 마케도니아 왕국의 일부로 남게 되었다.
올림피아스의 피신과 최후
알렉산더 대왕의 어머니 올림피아스가 카산드로스를 피해 피드나로 피신했으나, 포위 공격 끝에 사로잡혀 처형당했다.
피드나 전투와 로마 지배
로마 공화국의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가 이끄는 군대가 마케도니아의 마지막 왕 페르세우스를 격파한 피드나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로 마케도니아는 로마의 지배 하에 들어갔고, 피드나는 로마 식민지가 되었다.
기독교화 및 첫 바실리카 건설
피드나의 기독교화가 시작되었고, 이 시기에 첫 번째 바실리카가 건설되었다.
두 번째 바실리카 건설
도시의 수호성인 성 알렉산더에게 헌정된 두 번째 바실리카가 세워졌으나, 이후 불가리아인의 공격으로 불탔다.
키트로스로 개명 및 번영
피드나는 '키트로스(Kitros)'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14세기까지 피에리아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로 번성했다.
대형 바실리카 건설 및 요새화
이전보다 훨씬 큰 규모(23.20m x 16.60m)의 바실리카가 프레스코와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건설되었다. 프랑크족 점령기에는 요새로 개조되었다.
프랑크족 점령
제4차 십자군 이후 프랑크족에게 점령되어 주교 교회는 성으로 바뀌고 지휘관이 거주하는 탑이 세워졌다.
해안가 마을 포기
주민들이 해안가 마을을 떠나 현재의 내륙 지역인 키트로스에 정착했다.
여담
고대 피드나 유적지에서는 빛을 이용한 신호 교환 시스템인 **프릭토리아(Fryktoria)**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맞은편 할키디키 반도와 횃불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먼 거리까지 빠르게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전해진다.
유적지 내에는 22미터 깊이의 우물이 있으며, 돌로 만든 분수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우물 옆에는 물탱크도 있었다고 한다.
발굴된 북쪽 네크로폴리스(공동묘지)에서는 기원전 1400년경 후기 청동기 시대부터 기원전 3세기 초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는 3300기 이상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많은 유물들은 테살로니키 고고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기원전 5세기에 지어진 도시 성벽은 돌이 아닌 점토로 만들어졌었다고 하며, 필리포스 2세에게 점령된 후 파괴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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