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17~18세기의 자연 건조 미라와 그에 얽힌 기이한 이야기에 관심 있는 역사 애호가 및 독특한 경험을 찾는 개인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유리관에 안치된 8구의 미라를 가까이에서 관찰하며, 각 미라의 신원과 관련된 추정 이야기, 자연적 미라화 과정에 대한 설명을 접할 수 있다.
다만, 관람 공간이 협소하고 소요 시간이 짧아 입장료가 다소 비싸게 느껴질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접근 방법
🚇 대중교통 (트램)
- 브레멘 시내 트램을 이용하여 'Domsheide'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 정류장에서 브레멘 대성당(St. Petri Dom) 방면으로 도보로 이동하면 성당 근처에서 블라이켈러 입구를 찾을 수 있다.
블라이켈러는 브레멘 대성당 부속 건물에 위치하고 있다.
주요 특징
17세기와 18세기에 자연적으로 미라가 된 8구의 유해가 유리관 속에 안치되어 있다. 특히 입을 벌린 채 비명을 지르는 듯한 모습의 미라는 방문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운영시간: 운영 시간 내 항시 관람 가능
전시된 미라 중에는 스웨덴 행정관이었던 게오르크 베른하르트 폰 엥겔브레히텐, 성당 지붕에서 떨어져 죽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총에 맞은 군인이었던 인물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포함되어 흥미를 더한다. 각 미라에 얽힌 역사적 추측과 이야기가 함께 전해진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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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 대성당 외관
블라이켈러가 위치한 브레멘 대성당의 웅장한 외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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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주변 성서 정원(Bibelgarten)
일부 후기에 따르면 대성당 근처에 아름다운 안뜰이나 성서 정원이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사진을 찍기에 좋다고 한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납 지하실은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만 개방하며, 11월부터 3월까지의 동절기에는 문을 닫으니 방문 계획 시 참고한다.
전시 공간이 작고 관람에 약 10~15분 정도 소요되므로, 브레멘 대성당 등 주변 명소와 함께 일정을 계획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내부 사진 촬영은 금지되거나 제한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직원의 안내를 따르는 것이 좋다.
미라라는 특수한 전시물에 거부감이 있거나 어린아이를 동반한 경우 관람 여부를 신중히 고려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미라 발견
오르간 제작자 아르프 슈니트거의 조수들이 브레멘 대성당 동쪽 지하실에서 우연히 미라들을 발견했다. 이는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관리 주체 변경
수많은 방문객으로 인해 성당 목수가 작업에 지장을 받자, 열쇠는 성당지기에게 넘겨졌고, 성당지기들은 방문객을 통해 부수입을 얻었다.
도심 교회 매장 금지
나폴레옹 정부에 의해 브레멘 도심 교회 내 매장이 금지되었다. 이는 향후 미라 관리에 영향을 미쳤다.
미라 이전 (1차)
원래 미라가 있던 동쪽 지하실이 창고로 임대되면서, 미라들은 당시 석탄 저장고로 사용되던 고딕 양식의 예배당으로 옮겨졌다.
엥겔브레히텐 미라의 비밀 공개
스웨덴 행정관이었던 폰 엥겔브레히텐과 그의 부인의 미라가 다른 인물로 위장되어 옮겨졌다는 사실이 수십 년 만에 밝혀졌다.
유리 덮개 설치
그전까지 공개적으로 노출되었던 미라에 유리 덮개가 설치되어 훼손을 방지하게 되었다.
전시 공간 용도 변경
성당 복원 후 미라가 임시로 안치되었던 고딕 예배당 공간이 성당 박물관 용도로 필요하게 되었다.
현재 위치로 이전 및 공개
미라들은 성당 부속 건물로 옮겨져 현재와 같은 형태로 일반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여담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에게 이곳 미라의 손가락과 어린이의 손이 선물로 보내진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괴테는 브레멘 방문 제안은 거절했지만 이 유물들을 아들 아우구스트에게 주었다고 한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1909년 블라이켈러를 방문한 후, 인간의 유해는 불로 완벽하게 소멸시키는 것이 더 낫다는 취지의 감상을 남겼다고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원숭이 미라와 고양이 미라도 함께 전시되었으나, 현재 이 동물 미라들은 브레멘 위버제 박물관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1968년 유리 덮개가 설치되기 전까지는 미라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일부 방문객들이 기념품으로 미라의 머리카락이나 손가락 일부를 가져가는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장 유명한 미라 중 하나인, 입을 벌리고 있는 남성은 오랫동안 '성당 지붕에서 떨어진 지붕 수리공'으로 알려졌으나, 훗날 엑스레이 검사 결과 등에 총알이 박혀 사망한 군인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미라들의 자연 건조 현상은 오랫동안 지하실에 쌓여있던 납(Blei)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했으나, 현대 과학적 분석으로는 납 성분보다는 지하실의 건조한 공기와 특정 환경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자연적 탈수 현상으로 보고 있다.
나폴레옹 시대의 매장 규정 변화로 인해 더 이상 인간을 대상으로 한 미라화 실험이 불가능해지자, 대신 동물들을 이용한 실험이 이루어졌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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