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역사적인 건축물과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개인 여행객이나 커플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인근 퓌 뒤 푸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고요함을 찾는 이들에게 적합한 장소로 여겨진다.
방문객들은 부분적으로 복원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 건물과 회랑, 예배당 등 유적을 둘러볼 수 있으며, 조용한 정원에서 산책이나 명상을 즐길 수 있다. 현재도 수도승들이 거주하고 있어 그들의 생활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도 있다.
일부 방문객에게는 유적의 규모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볼거리가 많지 않다고 느껴질 수 있으며, 관람 시간이 짧다는 언급도 있다. 또한, 관람 가능 구역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아쉬움으로 꼽힌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레제르비에(Les Herbiers) 코뮌 내 아르들레(Ardelay) 옛 교구에 위치한다.
- 수도원 내에 방문객을 위한 소규모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시골 지역에 위치하므로 내비게이션 사용이 권장된다.
🚌 대중교통 이용
- 가장 가까운 대도시나 기차역에서 택시를 이용하거나,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대중교통 접근성은 낮은 편이다.
주요 특징
12세기에 건축된 수도원의 회랑, 샤피트르 실(참사회 회의실), 성당 유적 등을 둘러보며 중세 건축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전쟁과 혁명으로 소실된 부분과 복원된 부분이 공존하며 역사의 흔적을 보여준다.
운영시간: 운영시간 내
잘 가꾸어진 수도원 정원은 평화롭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산책하거나 잠시 명상에 잠기기에 좋은 장소이다. 벽 틈에 둥지를 튼 새들을 관찰하는 소소한 즐거움도 있다.
운영시간: 운영시간 내
매주 일요일 오전에 봉헌되는 미사에 참여하여 수도원의 종교적인 분위기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 현재도 수도승들이 생활하며 기도하는 공간의 일부를 접하는 기회이다.
운영시간: 일요일 오전 10:30
추천 포토 스팟
수도원 회랑 (Le cloître)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로마네스크 양식 회랑의 아치와 기둥은 중세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담기에 좋다.
샤피트르 실 유적 (Salle capitulaire)
옛 참사회 회의실의 문과 남아있는 건축 양식은 수도원의 역사적 깊이를 보여주는 배경이 된다.
수도원 정원 (Jardin de l'abbaye)
조용하고 평화로운 정원에서 수도원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자연 속에서의 한적한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주일 미사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수도원 성당에서 봉헌되는 정규 주일 미사로, 방문객도 참여하여 수도원의 경건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방문 팁
자유 관람 시 1인당 2유로의 기부금을 받는 경우가 있으며, 현금 준비가 권장된다.
수도원 내부는 현재도 수도승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므로 방문 시 정숙 및 사생활 존중이 요구된다.
인근 퓌 뒤 푸(Puy du Fou) 방문 후 조용한 휴식을 위해 들르기 좋은 장소이다.
수도승이 직접 안내하는 가이드 투어(유료, 최소 인원 조건 있음)가 운영될 때가 있으며, 이를 통해 수도원의 역사와 건축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30분에는 미사가 진행되므로, 이 시간에 방문하면 종교적인 분위기를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다.
방문객을 위한 작은 기념품 가게가 있으며, 수도승에게 그림이나 장소에 대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
역사적 배경
수도원 설립
생통주의 퐁두스 수도원에서 온 베네딕토회 수도승들에 의해 '그라나타리아(Granataria)'라는 고립된 영지에 설립되었다.
교황의 승인
교황 루치오 2세에 의해 수도원으로 공식 확인되고 교황의 보호 하에 놓였다.
주요 건축물 건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회랑, 샤피트르 실 등 주요 건물들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샤피트르 실 개조
샤피트르 실이 레요낭 양식(고딕 양식의 일종)으로 개조되었다.
수차례 파괴 및 약탈
영국군에 의해, 그리고 종교전쟁 기간 동안 여러 차례 화재와 약탈을 당했다.
쇠퇴
수도원에는 단 한 명의 수도승과 봉사자만 남게 되었고, 재산은 뤼송 신학교에 귀속되었다.
국유화 및 매각
프랑스 혁명으로 국가 재산으로 선언되었고, 수도원 건물은 1791년 농부에게, 성당은 1806년에 매각되었다.
점진적 철거
성당을 포함한 건물들이 점차 철거되어 4분의 3 가량이 파괴되었다.
역사 기념물 지정
프랑스 역사 기념물(Classé MH)로 지정되었다.
재매입 및 복원 시작
개인에 의해 재매입되어 부분적인 복원이 시작되었다.
수도 공동체 재정착
노트르담 데스페랑스회(Congrégation Notre-Dame d'Espérance) 소속 수도승들이 정착하여 수도 생활을 재개했다. 현재 방데 지역 유일의 남자 수도 공동체이다.
여담
이 수도원은 방데 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자 수도승들이 거주하며 활동하는 곳이라는 얘기가 있다.
설립 초기부터 지역 영주들의 많은 기증을 받아 성장했으며, 로마네스크 예술의 중요한 사례로 꼽히는 건축물들이 지어졌다는 언급이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개인에게 팔려 채석장처럼 사용되면서 건물의 4분의 3이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1963년 재매입 이후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부분적으로 복원되었으며, 현재도 복원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수도원 내에는 작은 정원이 있어 방문객들이 조용히 산책하거나 명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된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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