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중세 역사, 특히 카타르파의 이야기에 매료된 탐구적인 여행객이나 고성 건축의 웅장함을 직접 느끼고 싶은 이들이 주로 이곳을 찾는다. 성곽의 탑에 올라 푸아 시와 주변 계곡의 전망을 감상하거나, 박물관을 통해 지역의 역사를 배우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방문객들은 성 내부의 재현된 공간을 탐험하고, 대장간이나 석공 시연, 중세 무기 시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성과 연계된 박물관에서 푸아 백작 시대의 유물과 멀티미디어 전시를 통해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영어 설명이 부족하거나 특정 구역이 공사 중인 점, 그리고 탑 내부의 계단이 매우 좁고 가파르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시
- 푸아 시내에 주차 후 도보로 접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성 근처에도 주차 공간이 있으나, 협소하고 찾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주차 요금은 저렴한 편이라는 언급이 있다.
🚆 대중교통 이용 시
- 툴루즈에서 TER 기차를 이용하여 푸아(Foix) 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약 1시간 소요)
- 푸아 역에서 성까지는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
주요 특징
성의 상징적인 3개의 탑 중 2곳에 직접 올라가 볼 수 있으며, 최상층에서는 푸아 시내와 아리에주 계곡의 아름다운 전경을 360도로 조망할 수 있다. 다만, 탑 내부는 좁고 가파른 나선형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성 내부에서는 대장장이, 석공, 무기 전문가 등이 중세 시대의 기술과 생활상을 재현하는 다양한 시연을 선보인다. 방문객들은 투석기 발사 시연이나 활쏘기 체험 등에 참여하며 생생한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
성 입구의 현대적인 건물과 성 내부에 위치한 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중세 푸아 백작 시대에 이르기까지 아리에주 지역의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유물과 자료를 전시한다. 멀티미디어 전시와 인터랙티브 체험 요소를 통해 역사를 더욱 흥미롭게 접할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성의 탑 최상층
푸아 시내의 붉은 지붕들과 아리에주 강, 그리고 멀리 보이는 피레네 산맥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전망 포인트이다.
성 외부에서 바라본 모습
언덕 위에 위풍당당하게 솟아 있는 성의 전체적인 모습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지점이다. 특히 푸아 시내에서 성을 올려다보는 각도가 인상적이다.
성 안뜰 (Courtyard)
중세 시대의 건축 양식이 잘 보존된 성벽과 탑들을 배경으로 독특한 분위기의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시연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는 더욱 생동감 넘치는 장면을 포착할 수 있다.
방문 팁
성 내부, 특히 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매우 좁고 가파르며 나선형으로 되어 있어 노약자나 어린이, 고소공포증이 있는 방문객은 주의가 필요하다.
박물관 내 일부 전시물은 프랑스어로만 설명되어 있을 수 있으나, 와이파이에 연결하여 스마트폰 앱을 통해 영어 등 다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대장간, 석공, 무기 시연, 투석기 발사 등 다양한 중세 체험 프로그램이 하루 종일 진행되므로, 방문 전 공식 웹사이트나 현장에서 시간표를 확인하고 참여하면 더욱 풍성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입장권은 당일 재입장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성까지 올라가는 길과 성 내부는 대부분 돌길이거나 계단이 많으므로, 발이 편한 신발을 착용하는 것이 좋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약 €12.50 수준이며, 어린이 및 기타 할인 요금은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성 내부에 카페는 없으나, 기념품 가게와 화장실 시설은 마련되어 있다.
역사적 배경
초기 요새 존재
현재 푸아 성이 위치한 바위 언덕에는 7세기 이전부터 요새화된 구조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상 최초 등장
푸아 성(Castèl de Fois)이 역사 문헌에 처음으로 기록된 해이다.
카르카손 백작의 유산
카르카손 백작 로제 1세가 그의 유언을 통해 막내아들 베르나르에게 이 요새를 물려주었다.
푸아 백작령의 수도
푸아 성은 푸아 백작령의 수도가 되었으며, 이후 중세 군사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카타르파의 피난처
알비주아 십자군 전쟁 기간 동안, 푸아 성은 박해받던 카타르파에게 중요한 피난처를 제공했다. 시몽 드 몽포르 등에 의한 여러 차례의 포위 공격(1211년, 1212년 등)에도 불구하고 함락되지 않았다.
유일한 함락
푸아 가문의 두 분파 간 전쟁 중 내부의 배신으로 인해 단 한 번 함락되는 비운을 겪었다.
백작들의 거주 빈도 감소
푸아 백작들은 점차 생활이 불편한 성보다는 푸아 시내의 총독 관저(Palais des gouverneurs)를 선호하게 되었다.
나바라 왕위 계승
푸아 백작이 나바라의 왕위를 계승하였고, 마지막 푸아 백작이자 나바라 왕이었던 앙리 4세는 후에 프랑스 국왕이 되어 그의 피레네 영지를 프랑스에 병합시켰다.
푸아 지역 총독 관저 역할
푸아 지역 총독의 거처로 사용되며, 특히 종교 전쟁 시기에 지역 방어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계속 수행했다.
리슐리외 추기경의 파괴령 면제
당시 프랑스 전역의 많은 성들이 리슐리외 추기경의 명령으로 파괴되었으나, 푸아 성은 이 파괴령에서 제외된 몇 안 되는 성 중 하나였다.
감옥으로 사용
약 4세기 동안 정치범 및 일반 범죄자를 수용하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탑 중 원형탑은 15세기에, 두 개의 사각형 탑은 11세기 이전에 건설된 것이다.
아리에주 지방 박물관 개관
성에 아리에주 지방 박물관(Musée départemental de l'Ariège)이 들어서면서 대중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 현재 박물관은 푸아 백작 시대의 생활상을 재현하고 성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 전시로 재편되고 있다.
여담
푸아 성은 카타르파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장소로, '카타르의 땅을 찾아서(Discover Cathar Country)'와 같은 관련 서적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고 한다.
성의 세 개의 탑은 건축 시기가 각기 다르다. 가장 최근에 지어진 원형 탑은 15세기의 것이고, 두 개의 사각형 탑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11세기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 요새로 사용될 당시, 루이 13세 휘하의 유명한 총사대장이었던 트레빌 백작이나 루이 16세의 장관이었던 필리프 앙리 드 세귀르 원수 같은 저명인사들을 위한 성대한 환영회가 이 성에서 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성의 탑 내부 계단이나 벽면 곳곳에서는 과거 방문자들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낙서나 조각된 이미지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이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 갔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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