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중세 및 르네상스 건축 양식의 조화와 고성의 역사적 분위기를 직접 체험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 및 커플 방문객들이 주로 찾는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시대에 걸쳐 변화해 온 성의 외부 구조를 탐험할 수 있으며, 보존된 성벽을 따라 걸으며 주변 경관을 조망하거나, 일부 개방된 내부 공간인 '황금의 방' 등을 관람할 수 있다. 또한, 디지털 인터랙티브 전시를 통해 성의 역사와 건축 변천사를 영어 또는 프랑스어로 학습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방문 시점에 따라 일부 건물이나 구역이 보수 공사로 인해 출입이 통제되거나 내부 관람 범위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접근 방법
🚆 기차 이용
- 샤토브리앙 역(Gare de Châteaubriant)이 가장 가까운 기차역이다.
- 낭트(Nantes)에서 트램-트레인(Tram-Train)을 이용하거나, 렌(Rennes)에서 TER 지역 열차를 이용하여 도착할 수 있다.
역에서 성까지는 도보 또는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 자동차 이용
- 차량 방문 시 성 인근에 마련된 무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샤토브리앙 시내에는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아, 자동차가 있으면 주변 지역까지 둘러보기에 편리하다.
🚌 버스 이용
- 낭트, 앙제(Angers), 렌 등 주변 도시로 향하는 시외버스(Cars) 노선이 있다.
주요 특징
11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지어진 샤토브리앙 성은 중세의 견고한 요새와 우아한 르네상스 궁전 양식이 공존하는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방문객들은 성곽을 거닐며 시대별 건축 특징을 비교 관찰할 수 있다.
과거 방어 시설이었던 성벽 위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걸으며 샤토브리앙 시내와 주변 셰르 강 유역의 평화로운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역사의 흔적을 느껴볼 수 있다.
가르드 동(Bâtiment des Gardes) 내부에 마련된 인터랙티브 디지털 전시는 성의 천 년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영어와 프랑스어로 제공되어 외국인 방문객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특히 성의 건축 변천 과정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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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궁전 정면 (해자 건너편)
해자를 배경으로 르네상스 양식 궁전의 우아한 파사드 전체를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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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위 산책로
샤토브리앙 시내와 셰르 강 주변의 탁 트인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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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성곽 안뜰
오래된 석조 건물과 탑을 배경으로 중세 시대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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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전시
연중 비정기적 개최
샤토브리앙 성의 가르드 동(Bâtiment des Gardes)을 중심으로 역사, 예술 등 다양한 주제의 특별 전시가 연중 비정기적으로 개최된다. 과거에는 중세 보물, 왕실 의상, 지역 예술가 작품 등 다채로운 전시가 열렸다. 방문 시점에 따라 다른 전시를 경험할 수 있다.
방문 팁
성곽 부지 및 일부 구역은 무료로 입장하여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다.
성 바로 인근에 무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차량으로 방문하기 편리하다.
보다 심도 있는 관람을 원한다면 유료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으며, 영어와 프랑스어로 진행된다.
방문 시점에 따라 일부 건물이나 구역이 보수 공사로 인해 출입이 통제될 수 있다.
가르드 동(Bâtiment des Gardes) 건물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특별 전시가 열리기도 한다.
성 내부에는 관람객을 위한 무료 화장실이 있다.
역사적 배경
브리앙에 의한 최초 건설
브르타뉴 공국의 국경 방어를 위해 목조 성채로 처음 세워졌다.
석조 킵(주탑) 재건축
초기 목조 구조물에서 석조 킵을 중심으로 한 형태로 발전했다.
중세 요새 확장
홀, 예배당, 성벽 등이 추가 및 재건축되며 전형적인 중세 요새의 모습을 갖추었다.
광기 전쟁과 프랑스군 점령
프랑스 왕국의 군대에 의해 함락되었으며, 이후 프랑수아즈 드 디낭이 성을 복원하고 르네상스 양식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궁전 건축
가르드 동, 장 드 라발 동, 그레이트 갤러리 등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들이 증축되어 중세 성채와 르네상스 궁전이 공존하는 독특한 형태가 되었다.
귀족 가문 소유 및 변화
몽모렌시 가문과 콩데 공작 가문의 소유를 거치며 일부 내부 장식이 추가되었으나, 1720년경 킵의 지붕이 붕괴되는 등 변화를 겪었다.
프랑스 혁명과 근대
혁명 이후 국유화되어 행정 관청, 법원, 감옥 등 다양한 공공시설로 사용되었으며, 일부는 민간에 매각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파괴
연합군의 폭격으로 르네상스 궁전의 남쪽 끝부분이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다.
복원 및 관광지화
역사 기념물로 지정된 이후 여러 차례의 복원 작업을 거쳐 현재는 일부 구역이 대중에게 개방된 역사 관광지로 운영되고 있다.
여담
이 성은 11세기 브르타뉴 공국을 방어하기 위한 국경 요새로 처음 세워졌으며, 이후 수세기에 걸쳐 증개축되었다고 한다.
성과 관련된 두 가지 유명한 전설이 전해지는데, 하나는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영주 제프루아 4세와 그의 아내 시빌의 이야기이며, 다른 하나는 프랑수아 1세의 정부였던 프랑수아즈 드 푸아와 그녀의 남편 장 드 라발에 얽힌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후자의 전설에 따르면 매년 10월 16일 자정에 성 안을 행진하는 유령 행렬이 나타난다고도 한다.
프랑스 혁명 이후 성은 개인에게 매각되어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가, 나중에는 지방 행정 관청, 법원, 경찰서 등으로도 활용되었다.
성의 주요 부분 중 하나인 킵(Keep, 주탑)의 지붕은 18세기 초 폭풍으로 인해 붕괴된 후 오랫동안 복원되지 못하고 폐허로 남아있었다.
르네상스 양식 궁전의 남쪽 끝부분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4년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이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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