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역사적 건축물과 종교 예술에 관심이 많은 방문객이나, 도시 중심부에서 조용히 사색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이들이 주로 찾는다. 천 년에 가까운 역사를 간직한 이곳에서 남부 고딕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조화를 감상할 수 있으며, 정교한 제단화와 유서 깊은 오르간 등 내부의 주요 성물들을 둘러볼 수 있다.
다만, 일부 방문객들은 19세기에 제작된 내부 장식의 손상 상태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접근 방법
주요 특징
주로 벽돌로 지어진 이 성당은 남부 고딕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14세기에 제작된 서쪽 석조 정문이 눈에 띈다. 내부에서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흔적인 반원형 아치 창문과 조각된 기둥머리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남쪽 두 번째 경당에 위치한 생피에르 제단화는 성모자상과 1811년 마리니가 그린 두 점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17세기에 처음 제작되어 여러 차례 복원 및 개조를 거친 유서 깊은 모쿠르 오르간도 주목할 만하다.
가야크에서 태어난 성 에밀리 드 비알라 성녀의 유해함이 안치되어 있으며, 장 바티스트 데스팍스의 그림 '십자가를 경배하는 천사들' 등 다양한 종교 예술품을 통해 이곳의 신앙적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서쪽 석조 정문
14세기에 만들어진 웅장하고 정교한 석조 정문은 성당의 대표적인 촬영 지점이다.
벽돌 외관과 다각형 종탑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성당의 외관과 남쪽 모퉁이의 다각형 종탑은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본당 내부 및 제단화
높은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화려한 생피에르 제단화는 내부의 주요 촬영 대상이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성당 내부는 예배와 기도를 위한 공간이므로, 방문 시에는 정숙을 유지하는 것이 권장된다.
19세기에 제작된 내부 장식의 일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손상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때때로 지역 젊은이들을 위한 콘서트 등 소규모 음악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역사적 배경
존재 기록 및 기증
알비 교구의 주교 프로테르가 새로 설립된 생미셸 드 가야크 수도원에 이 성당을 기증하면서 처음으로 그 존재가 기록되었다. 당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추정된다.
소유권 이전
알비 주교의 관할 하에 있다가, 가야크의 생피에르와 생앙드레 병원에 양도되었다.
고딕 양식 재건축 시작
기존 로마네스크 양식의 일부 요소를 보존하면서 고딕 양식으로 대대적인 재건축이 시작되었다.
본당 및 서쪽 정문 완공
본당(네프) 공사가 마무리되고 서쪽 석조 정문이 설치되었다.
종교 전쟁 시기 수난
위그노 전쟁 중 개신교도들에 의해 점령되어 설교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약탈과 파괴를 겪었다. 이후 즉시 복구 작업이 이루어졌다.
천장 붕괴 및 복원
천장의 일부가 붕괴되어 복원되었으며, 이때 네오-로마네스크 양식의 성가대석이 추가되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수리 및 장식 추가
프랑스 혁명으로 손상된 부분이 수리되었고, 현재 볼 수 있는 내부 벽화 장식이 이때 추가되었다.
상태 악화 및 폐쇄
건물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되어 대대적인 복원을 위해 폐쇄되었다.
역사 기념물 지정
프랑스 역사 기념물(Monument Historique)로 지정되었다.
복원 후 재개방
대대적인 수리 후 다시 문을 열고 예배가 재개되었다.
오르간 복원 완료
모쿠르 오르간의 복원이 완료되어 필립 르페브르에 의해 봉헌 연주가 이루어졌다.
여담
종탑에 있는 5개의 종 중 가장 큰 종은 1499년에 제작된 것으로, 원래 인근 칸데일 수도원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성당 내부에 유해함이 모셔진 성 에밀리 드 비알라 성녀는 가야크에서 태어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종교 전쟁 중이던 1562년에는 잠시 개신교도들이 이곳을 점령하여 그들의 설교 장소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701년에 성당 천장의 일부가 무너져 내린 사건이 있었는데, 이는 당시 건물의 유지보수가 부족했기 때문일 수 있다는 추측이 있다.
이 성당이 위치한 가야크 마을은 프랑스 르퓌에서 시작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의 경로 중 하나로 언급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