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독특하고 웅장한 건축 양식을 직접 감상하고 유대교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배우고 싶은 역사 애호가나 건축학도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유럽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시나고그 내부를 경험하려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방문객들은 화려한 내부 장식과 스테인드글라스를 감상할 수 있으며, 2층 갤러리에서는 시나고그의 역사와 복원 과정에 대한 전시물을 살펴볼 수 있다. 때때로 개최되는 콘서트나 문화 행사에 참여하여 특별한 음향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일부 방문객들 사이에서는 입장료가 다소 비싸다는 의견이 있으며, 입구가 명확하지 않거나 직원의 응대가 아쉬웠다는 경험담도 간혹 있다.
접근 방법
🚶 도보 및 대중교통
- 플젠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여 주요 관광지에서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 트램이나 버스를 이용하여 'Sady Pětatřicátníků'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가깝다.
건물 외관에 비해 입구가 눈에 잘 띄지 않을 수 있으며, 일부 방문객은 입구를 찾는 데 약간의 어려움을 겪었다는 언급이 있다. 건물 주변을 잘 살피고, 필요한 경우 현지인에게 문의하거나 초인종을 누르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무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된 독특하고 거대한 내부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아라비아 스타일의 화려한 천장 장식, 인도풍의 정교한 토라 아크, 그리고 다채로운 빛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매우 인상적이다.
2층 갤러리 공간에는 시나고그의 건립 역사, 플젠 유대인 공동체의 이야기, 홀로코스트 시기의 아픔, 그리고 대대적인 복원 과정 전후를 비교하는 사진 등 방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컴퓨터 정보 부스를 통해 더 자세한 내용을 찾아볼 수도 있다.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뛰어난 음향 시설을 바탕으로 정기적으로 클래식 콘서트, 합창 공연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도 활발히 이용된다. 벽면을 활용한 미술 전시회도 종종 개최된다.
운영시간: 행사 일정에 따라 다름
추천 포토 스팟
중앙 홀 전체 조망 (1층 중앙 또는 2층 발코니)
웅장한 규모의 아치형 천장, 화려한 샹들리에, 양쪽으로 늘어선 기둥과 좌석까지 시나고그 내부 전체의 장엄함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다.
토라 아크 (Aron Kodesh) 근접 촬영
독특한 인도풍 디자인과 금박,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된 토라 아크는 그 자체로 훌륭한 피사체이다. 디테일한 장식을 클로즈업하여 촬영하기 좋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과 빛의 조화
다채로운 색상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는 빛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광경을 포착할 수 있다. 특히 햇빛이 좋은 날 더욱 인상적인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2층에 마련된 컴퓨터 정보 부스에는 시나고그의 복원 전후 사진 등 흥미로운 자료가 많으니 시간을 내어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남성 방문객에게는 입장 시 키파(유대인 남성이 쓰는 모자)가 제공되며,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시나고그 뒤편 건물에 플젠 지역 여성 유대인에 관한 정보가 전시되어 있으니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다.
내부 관람 시 2층 발코니에 올라가면 1층 전체를 조망하며 더욱 깊이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입구가 잘 보이지 않거나 닫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 주저하지 말고 초인종을 눌러 문의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초기 계획 및 초석 마련
비엔나 건축가 막스 플라이셔가 고딕 양식으로 초기 설계를 하였으나, 인근 성 바르톨로메오 대성당보다 높은 탑 계획으로 인해 시의회로부터 거부되었다.
새로운 디자인 승인
건축가 엠마누엘 클로츠가 기존 평면을 유지하되 탑 높이를 20m 낮추고 무어-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새로운 디자인을 제시하여 승인받았다.
완공
건축가 루돌프 슈테흐에 의해 162,138 플로린의 비용으로 완공되었다. 당시 플젠에는 약 2,000명의 유대인이 거주했다.
나치 점령과 보존
나치 독일 점령 기간 동안 창고로 사용되면서 기적적으로 파괴를 면했다. 그러나 플젠 유대인 공동체는 홀로코스트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마지막 정기 예배 및 폐쇄
마지막 정기 예배가 열린 후, 공산주의 정권 하에서 시나고그는 폐쇄되고 방치되어 점차 황폐해졌다.
대대적인 복원
약 6,300만 체코 코루나의 비용을 들여 대대적인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고, 1998년 2월 11일 다시 문을 열었다.
내부 추가 보수
내부 공간에 대한 추가적인 보수 및 단장 작업이 이루어졌다.
활발한 활용
과거 겨울 기도실이었던 공간에서 정기적인 예배가 계속되고 있으며, 중앙 홀은 콘서트,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2024년 기준 플젠의 유대인 인구는 약 200명이다.
여담
초기 설계안의 탑 높이가 인근 대성당보다 높아 시의회의 '질투'로 인해 디자인이 변경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건축 양식은 매우 독특한 혼합주의적 면모를 보이는데, 러시아 정교회에서 볼 수 있는 양파 모양의 돔, 아라비아풍의 천장 장식, 심지어 인도 건축 양식을 연상시키는 토라 아크까지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이곳을 창고로 활용했기 때문에 의도적인 파괴를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로 여겨진다.
완공 당시 플젠 유대인 공동체의 규모는 약 2,000명이었으나, 홀로코스트 이후 급감하여 현재는 약 200명으로 줄었다고 알려져 있다.
1990년대 후반 진행된 복원 작업에는 6,300만 체코 코루나라는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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