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오르샤의 역사적 건축물과 벨라루스 예술에 관심 있는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 곳이다. 17세기에 건립된 예수회 대학 건물은 오랜 기간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다 복원되어, 현재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의 문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방문객들은 복원된 바로크 양식 건물의 고풍스러운 외관과 시계탑을 감상할 수 있으며, 내부에서는 벨라루스 화가 그로미코의 작품을 비롯한 미술 전시와 오르샤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또한, 목각 및 자수 등 지역 장인들의 공예품 전시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박물관 내 전시실의 수나 전시 내용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접근 방법
🏞️ 위치
- 오르샤 중심부, 오르시차 강변에 자리 잡고 있다.
🚗 자가용
- 건물 근처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차량으로 방문 시 편리하다.
주요 특징
벨라루스의 유명 화가 그로미코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이 2층에 마련되어 있다. 다양한 회화 작품을 통해 그의 예술 세계를 접할 수 있다.
예수회 대학의 역사와 관련된 모형, 유물 및 오르샤 지역의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 목각, 자수 등 지역 장인들의 공예품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건물 1층에는 벨라루스의 저명한 작가 블라디미르 코로트케비치를 기념하는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다. 조용하고 쾌적한 분위기에서 다양한 서적을 접할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예수회 대학 건물 외관 및 시계탑
재건된 바로크 양식의 건물과 눈에 띄는 시계탑은 이 장소의 상징적인 모습이다. 오르시차 강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건축물을 사진에 담을 수 있다.
내부 안뜰 모자이크
건물 안뜰 벽면에 설치된 모자이크 장식이 인상적이다. 독특한 예술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박물관 관람 시 오디오 가이드(유료, 약 10 벨라루스 루블)를 이용하면 전시물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미술관에서는 현지 및 외국 예술가들의 전시회가 종종 열리며, 때로는 라이브 음악 공연이 함께 진행되기도 한다.
부속 건물인 부르사(옛 기숙사)에는 '장인의 집(Дом ремёсел)'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점토 공예, 바구니 짜기 등 다양한 공예 체험을 할 수 있다.
건물 내부에 카페 겸 레스토랑이 있어 관람 후 휴식을 취하거나 식사를 할 수 있으며, 평균 식사 비용은 15-20 벨라루스 루블 정도이다.
역사적 배경
예수회 대학 창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국왕 지그문트 3세와 대법관 레프 사피에하의 지원으로 오르샤에 예수회 대학이 처음 세워졌다. 초기에는 목조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조 건물 건축
바로크 양식의 석조 성 미카엘 성당과 대학 건물이 건축되었다. 이는 대학의 중요한 발전 단계였다.
성 미카엘 대천사 성당 재건
기존 성당이 화재 등으로 소실된 후, 건축가 폰타나의 설계와 베네딕트 메즈머의 감독 하에 성 미카엘 대천사 성당이 벽돌로 재건되었다.
대학 건물 완공 및 시설 확장
대학 건물의 전체 건설이 마무리되었다. 당시 대학 내에는 학교, 기숙사(부르사), 극장, 정원, 약초 재배 온실, 실험실, 그리고 오르샤 최초의 약국까지 갖추고 있었다.
나폴레옹 군 주둔
러시아 원정 중이던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끄는 군대가 이곳 예수회 대학에 주둔했다.
예수회 활동 금지
러시아 제국 황제 알렉산드르 1세에 의해 예수회의 활동이 금지되면서 오르샤 예수회 대학도 영향을 받았다.
성당 폐쇄 및 철거
성 미카엘 성당이 폐쇄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은 철거되었다.
교도소로 사용
대학 건물은 용도가 변경되어 약 150년 동안 교도소로 사용되었다.
복원 및 재건
교도소로 사용되던 건물 중 현존하는 일부가 복원되었으며, 상징적인 시계탑도 새롭게 재건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여담
이곳은 과거 교도소로 사용된 역사가 있으며, 약 150년 동안 그 기능을 유지했다고 한다.
복원된 시계탑의 시계는 특정 시간이 되면 벨라루스 작곡가들의 유명한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시계가 실제로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방문객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는 얘기가 있다.
1812년 러시아 원정 당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과거 예수회 대학 시절에는 학교 외에도 극장, 약초를 재배하는 온실과 정원, 자체 실험실과 도시 최초의 약국까지 운영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