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흐로드나의 역사적 중심지에서 옛 통치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거나 중세 건축물에 관심 있는 역사 애호가 및 문화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성 내부의 박물관에서 20만 점이 넘는 다양한 유물을 관람할 수 있으며, 네만 강과 고로드니찬카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세워진 성의 건축학적 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최근 진행된 복원 공사가 역사적 고증이 부족하고 일부 원형이 훼손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접근 방법
주요 특징
성 내부에 마련된 역사 고고학 박물관은 20만 점 이상의 방대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어 벨라루스 최대 규모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지역의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역사적 유물과 고고학적 발견물들을 통해 시간 여행을 떠나볼 수 있다.
11세기 목조 성채에서 시작하여 비타우타스 대공 시절 석조 고딕 양식으로, 스테판 바토리 왕 시기에는 북부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으로 변모한 성의 건축적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최근 복원을 통해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네만 강과 고로드니찬카 강이 합류하는 전략적 요충지에 세워진 성의 입지를 확인할 수 있다. 성벽 주변을 거닐거나 새롭게 추가된 전망대 근처에서 강과 어우러진 성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중앙 문 근처 현대식 전망대
최근 복원과 함께 설치된 전망대에서 성과 주변 네만 강 풍경을 함께 담을 수 있다.
네만 강변에서 바라본 성채 전경
강 건너편이나 강변 산책로에서 성 전체의 웅장한 모습을 촬영할 수 있다.
복원된 성 내부 및 전시관
르네상스 양식으로 꾸며진 공간이나 박물관의 흥미로운 유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방문 팁
역사적 배경
목조 성채 건설
야로슬라프 1세 현명공의 아들 후예인 흑루테니아 통치 왕조의 거점으로 네만 강과 고로드니찬카 강 합류 지점에 최초의 목조 성이 세워졌다.
비타우타스 대공의 석조 성 재건
비타우타스 대공이 성을 석조로 재건하고 5개의 벽돌 고딕 양식 탑을 추가하여 주요 거주지 중 하나로 삼았다.
카지미에시 4세 사망
리투아니아의 공식 수도보다 흐로드나를 선호했던 카지미에시 4세 야기엘론이 이곳에서 폴란드 왕위를 제안받았고, 같은 해에 사망했다.
스테판 바토리 왕의 르네상스 양식 궁전 계획
스테판 바토리 왕이 흐로드나를 동유럽 제국의 수도로 구상하고, 기존 성을 북부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으로 개조하려 했으나 1586년 그의 사망으로 중단되었다.
러시아-폴란드 전쟁으로 인한 파괴
러시아-폴란드 전쟁 중 러시아 군에 의해 성채가 크게 파괴되었다.
크시슈토프 지그문트 파츠에 의한 복원
크시슈토프 지그문트 파츠가 자금을 모아 왕실 거주지를 재건축했다. 복원된 성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의회(세임)가 세 번 중 한 번씩 열리는 장소로 선택되었다.
대북방 전쟁으로 인한 손상
대북방 전쟁 중 성이 심하게 손상되어 왕실은 신 흐로드나 성으로 이전했다.
러시아 군 막사로 사용
폴란드 분할 후 성은 러시아 군에 넘겨져 막사로 사용되었다.
대규모 재건축 및 논란
대규모 재건축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역사적 고증 부족 및 원형 훼손 논란이 제기되었다. 현재는 20만 점 이상의 유물을 소장한 역사 고고학 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다.
여담
스테판 바토리 왕은 흐로드나를 자신의 광대한 동유럽 제국의 수도로 만들고자 했으며, 이 성을 북부 이탈리아 르네상스 풍으로 개조하려 했으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계획은 미완으로 남았다고 한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절, 복원된 성은 매 세 번째 의회(세임)가 열리는 중요한 장소로 지정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최근 복원 과정에서 건설업자가 폴란드어와 독일어로 된 역사 기록을 제대로 해독하지 못해 중앙 탑의 돔 형태나 탑과 갤러리 사이의 층고 등에서 오류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있다.
복원 과정에서 16세기에 지어진 일부 원래 성벽이 철거되어 논란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현재 성은 20만 점이 넘는 유물을 소장한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는 벨라루스에서 손꼽히는 규모로 알려져 있다.